수십 년 전에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주민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건축물들이 있다. 냐짱(Nha Trang) 주민들에게 하얀 집, 즉 '러우 옹 뜨(Lầu ông Tư)'는 바로 그런 건축물이다.
멀리서 오랜만에 돌아온 옛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내일 아침 러우 옹 뜨 쪽에서 커피 한잔하자.” 그렇다, 그곳은 응우옌빈키엠(Nguyễn Bỉnh Khiêm)과 쩐푸(Trần Phú)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 맞은편으로, 지금은 냐짱 뷰 레스토랑(Nhà hàng Nha Trang View)이나 378 게스트하우스(Nhà khách 378), 혹은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냐짱에서 여러 해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러우 옹 뜨 자리'로 익숙하게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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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우 옹 뜨. 사진: 자료 사진 |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 바다를 바라보다가, 시인 꽈익 떤(Quách Tấn)이 《침향의 고장(Xứ Trầm Hương)》에서 들려준 일화가 문득 떠올랐다. “옛날 이곳은 온통 초가삼간과 흙벽집뿐이었다. 오직 A. 예르생(A. Yersin) 박사의 집만이 웅장한 벽돌과 기와로 지어지고 하얀 석회를 칠해져 있었다. 외국인들이 꾸후안(Cù Huân) 바다를 지나다 육지를 보고 어느 고장이냐고 물었다. 통역관은 희끄무레한 예르생 박사의 집을 흘끗 보고는 ‘냐짱(Nhà Trắng - 하얀 집)’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외국인이 지도에 이를 적었는데, 유럽 문자에는 성조 기호가 없어 ‘Nha Trang’으로 표기했다.” 꽈익 떤 시인에 따르면 이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며, ‘냐짱’이라는 지명은 그 이전부터 참어(Chăm)로 까이(Cái)강을 부르던 ‘야트란(Ya-tran)’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는 초창기 냐짱의 모습에서 러우 옹 뜨가 지녔던 특별한 위상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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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우 옹 뜨 경내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 사진: 자료 사진 |
본래 버려진 군사용 벙커였던 러우 옹 뜨는 그가 사들여 3층 집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각 층마다 방이 하나씩만 있어 1층은 주방과 식당, 2층은 침실, 3층은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꼭대기에는 돔 형태의 공간이 있어 그가 망원경을 설치해 두었는데, 이는 어촌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날씨를 살피고 예보하던 관측 도구 중 하나였다. 1939년, 그는 쓰나미와 강력한 폭풍을 예보하고 사람을 보내 쏨꼰(Xóm Cồn) 주민 전원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밤새 몰아친 폭풍에 집들은 폐허가 되었지만, 주민들은 모두 안전할 수 있었다. 러우 옹 뜨는 가난한 백성을 고난에서 구하기 위해 전설 속에서 나타난 기적의 집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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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의사로, 어릴 적부터 A. 예르생을 인생의 우상으로 여겨왔다. 학창 시절 친구는 A. 예르생 박사가 쏨꼰(Xóm Cồn) 마을의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주곤 했다. 아픈 사람들은 모두 러우 옹 뜨(Lầu ông Tư)로 찾아왔다. 그는 정성껏 진맥을 짚고 상처를 소독해 주었으며 직접 약을 지어주었다. 가난한 쏨꼰 주민들은 감사의 뜻으로 생선이나 코코넛을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그는 결코 돈을 받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선물만큼은 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기꺼이 받았고, 대신 그들의 자녀들에게 다른 선물을 전할 방법을 찾곤 했다. 쏨꼰 아이들에게 러우 옹 뜨는 '천국'과도 같았다. 그는 종종 사탕과 책을 나누어 주며 아이들에게 글을 배우도록 격려했다. 업무로 몹시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해 주는 시간을 내어주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하얀 천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보며 신기해했고, 박애 정신이 넘쳐흐르는 그 집 안에서 소리 높여 환호성을 질렀다. 러우 옹 뜨는 지식과 세상에 드문 자애로움이 깃든 “신전”이었다.
친구는 40년 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1986년 여름, 해변 청소 봉사 활동을 할 때 우리 조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러우 옹 뜨까지의 해변 구간을 배정받았다.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한 친구는 러우 옹 뜨의 1층 한구석이 내무부 휴양소(현재 공안부 378 게스트하우스) 구역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맞섰다. 모두가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 그 누구도 이 휴양소 내부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에, 결론 없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훗날 그 하얀 집은 1975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응우옌빈키엠(Nguyễn Bỉnh Khiêm) 거리와 쩐푸(Trần Phú)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우리는 러우 옹 뜨의 터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억해 낸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곳을 찾을 때면 우리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냐짱 주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기억을 되찾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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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옹 뜨는 언제 복원될까?” - 친구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2년 전(2024년), 카인호아성 인민위원회가 A. 예르생 박물관 건립 사업 개요를 승인했어.” 그 승인 결정문 전문을 읽었을 때 내 친구는 특히 강조된 다음 구절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이 땅에서 A. 예르생 박사에 대한 냐짱 주민들의 기억과 결부된 건축물 및 유산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건축물은 과거 쏨꼰의 '러우 옹 뜨' 모델을 본떠 주요 전시 공간이자 A. 예르생 박물관의 건축적 랜드마크로 조성함으로써, 러우 옹 뜨를 복원하고자 하는 냐짱 각계각층 주민들의 염원에 부응해야 한다.” 계획에 따르면 이 박물관은 2030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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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러우 옹 뜨 자리에 들어설 A. 예르생 박물관 모형 조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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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예르생 공원-박물관 복합단지 모형 조감도. |
이 대목에서 나는 10여 년 전 A. 예르생(A. Yersin) 박사의 후손인 다니엘 민센(Daniel Minsen, 75세) 씨를 만났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저희 할아버지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묘소를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절에서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수많은 유산이 소중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아름다운 거리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 숨 쉬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러우옹뜨(Lầu ông Tư)를 복원하는 것은 냐짱 시민들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유족과 전 세계에서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응우옌 빈 쓰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