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향기가 있는가 하면, 기억 저편 깊은 곳에 조용히 머무는 냄새도 있다. 내게 그것은 계절을 알리는 칠엽수 꽃향기도, 햇풋찹쌀의 내음도,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음식 냄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가 늘 입으시던 낡은 우비 냄새였다. 낡아 헤진 플라스틱의 퀴퀴한 냄새, 빗물과 땀 냄새,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고단함이 배어 있는 그런 냄새였다.
어린 시절의 익숙한 냄새
어릴 적 나는 아침에 내리는 비를 몹시 두려워했다. 비는 늘 불시에 찾아왔다. 어머니가 막 불을 지피실 때, 내가 교복 단추를 채우느라 낑낑거리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마당에서는 양철 지붕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벽돌 틈 사이로 물길이 흘렀다. 학교로 가는 흙길은 원래도 울퉁불퉁했는데,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해 질척거렸다. 나는 문가에 서서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학교를 쉬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신 적이 없었다.
“가방 챙겨라, 아빠가 학교 데려다줄게!”
거센 빗소리 사이로 처마 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이미 낡은 자전거 곁에 서 계셨고, 손에는 비바람에 바래 군데군데 하얗게 변한 국방색 우비가 들려 있었다. 그 우비를 아버지가 언제 사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많은 비의 계절을 함께했고, 동트기 전 출근길과 마을 길에 등불이 켜지던 퇴근길을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비가 오든 날이 맑든 우비를 반듯하게 네모나게 접어 자전거 안장 뒤편에 단정히 묶어 두는 습관이 있으셨다. 퇴근길에 비를 맞고 돌아오신 날이면 아버지는 물기를 털어내고 처마 구석에 박힌 못에 걸어 두셨다가, 마르면 다시 반듯하게 개어 놓으셨다. 한번은 왜 새 우비를 사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아버지는 그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직 비를 가려줄 수 있으니 그냥 쓰는 거지,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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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비를 걸치고 비 오는 날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떠올리게 한다. (AI로 생성된 삽화) |
그 시절에는 아버지가 왜 그리도 아끼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 눈에는 아버지의 우비가 낡고 냄새만 지독하게 나는 물건일 뿐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아버지가 우비 자락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실 때마다, 나는 그 특유의 퀴퀴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 오랫동안 눅눅해진 플라스틱 냄새, 땀에 젖은 옷감 냄새, 질척거리는 진흙길에서 피어오르는 젖은 흙냄새. 때로는 토라져 바깥 공기라도 마셔보겠다고 억지로 머리를 밖으로 내밀기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시며 엄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바짝 붙어 앉아라, 다 젖는다!” 그러면 나는 다시 아버지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헐렁한 우비 속에서 내 세상은 문득 작아지곤 했다. 앞에는 아버지의 야윈 등, 위로는 바람을 맞아 팽팽해지는 우비, 아래로는 물웅덩이를 지나며 구르는 바퀴 소리가 있었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머리 바로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가빠지는 아버지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따금 거센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이 날리면 차가운 빗물이 다리에 닿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서둘러 옷자락을 끌어내리며,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가려주셨다.
어떤 비가 쏟아지는 아침에는 바퀴 절반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깊은 진흙탕을 지날 때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셔야 했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어깨가 흠뻑 젖는데도, 아버지는 뒤돌아보며 물으셨다. “춥지 않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별로 춥지 않았다. 가장 넓고 빈틈없는 우비 자락을 아버지가 나를 덮어주는 데 쓰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하셨다. 비가 종일 끊이지 않는 날에도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가셨고, 색바랜 우비는 바람에 부풀어 작은 돛처럼 나부꼈다. 저녁에 돌아오실 때면 바퀴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아버지의 양손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처마 밑에 자전거를 세우고, 우비를 벗어 몇 번 힘껏 턴 뒤 낯익은 못에 걸어두셨다. 길 위의 모든 고단함을 그 처마 밑 한구석에 남겨두고서야 집 안으로 들어와 자식의 공부는 어땠는지 다정하게 물으시는 것 같았다.
다정한 그리움 속에 영원히 남아
그리고 나는 자랐다. 옛날의 흙길은 차츰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낡은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아침마다 아버지의 등 뒤에 앉아 등교하지 않았고,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도 우비를 챙기라고 챙겨주는 사람도 필요 없어졌다. 내게는 더 가볍고 예쁘며 새 비닐 냄새가 솔솔 풍기는 새 우비들이 생겼다. 삶은 그렇게 나를 수많은 비바람의 계절을 지나 어른의 분주함 속으로 휩쓸고 갔다.
어느 비 오는 오후, 집에 돌아왔다가 우연히 처마 밑 구석에 걸린 낡은 우비를 보았다. 그 시절의 못은 여전히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우비는 더 낡아 해졌고 접힌 자국은 깊게 패였으며 푸른빛은 거의 다 바래 있었다. 손을 뻗어 만져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어린 시절의 익숙한 냄새를 다시 맡아보았다. 찰나의 순간,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질척이던 시골길과 비를 맞으며 묵묵히 페달을 밟던 아버지의 두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 등 뒤에 앉아 널찍한 우비 품에 아무 걱정 없이 웅크린 채, 앞서가는 이가 얼마나 차갑게 젖어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한 아이가 보였다.
지금도 빗속에서 아이를 태우고 등교하는 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한참을 더 바라보곤 한다. 아버지의 등 뒤에 꼭 붙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옷자락을 끌어당겨 아이를 가려주려 애쓰는 아버지의 손을 바라볼 때면 내 마음속에도 다정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대개 여름날 매미 소리나 햇짚 냄새, 혹은 겨울 저녁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로 어린 시절을 기억하곤 한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우비 냄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없는 냄새, 그 안에는 자식에게 평온한 날들을 안겨주기 위해 묵묵히 비바람을 맞서온 아버지의 세월이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 모든 세월 동안 비옷은 우리 둘을 다 가려줄 만큼 결코 넓지 않았다는 것을. 그저 아버지가 늘 젖는 쪽을 택하셨을 뿐이라는 것을.
한야월


